Jay Miller
제이 밀러

수평선 너머의 빛


“결국 모든 게 다 잘 되지 않겠습니까?”



Job
이등항해사
Region
할리카사
Age
28세
Called
She, He, They​
All
Appearance
저 멀리 수평선 너머로 해가 지고 있었다. 이제 막 도착해 짐을 내리느라 바쁜 선원들과, 정신없는 고함이 오가는 부둣가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인간 하나. 눈에 띈다고는 해도, 유유자적 뱃전을 거닐다 선장에게 한소리 듣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어쨌든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물결 사이로 막 파라옹 호에서 내리는 청년이 바로 이등항해사 제이 밀러다.
목 아래를 덮는 길이로 곱슬거리는 얼룩덜룩한 금발은 언제나 흙먼지인지 바닷물인지 모를 것이 말라붙어 도저히 깔끔하다고는 할 수 없는 행색이다. 진흙을 덧바른 듯한 피부도 마찬가지. 노련한 뱃사람까지는 아니더라도 단단한 손이며 그을린 팔다리가 주변 선원들에 비해 그리 특이해보이지 않을 정도의 모양새는 갖추고 있다.
눈여겨 볼 만한 특징이라면 글쎄, 오른뺨에 길게 흘러내리는 옆머리와 대조적으로 왼쪽에는 짧은 나이프로 거칠게 잘려나간 흔적이 있다는 것 정도. 누가 보면 싸움이라도 하다 온 건가 싶은 꼴이지만, 헤실거리며 웃는 낯을 보면 그냥 자기 혼자 다듬으려다 실수했는지도 모르겠다. 치켜올라간 눈매나 얼굴상을 자세히 뜯어보면 무표정할 때는 충분히 사나운 인상일 수도 있겠다 싶지만, 거의 언제나 웃는 얼굴이기에 큰 의미는 없다.
신장은 어림하여 170일까. 그리 근육질의 체형은 아니지만 보이는 것에 비해서는 힘 쓰는 일을 잘한다. 손마디가 부르트고 단단히 알이 배긴 손은 무뎌보이지만 손쉽게 굵은 밧줄을 끌어올리고 섬세하게 그것을 엮는 재주가 있다. 옷차림은 빳빳하게 잘 다린 셔츠 차림이지만 구겨진 흔적이며 얼룩이 몇 번 지워진 자국이며 하는 것이 영 번듯하지는 않아 보인다.
거의 언제나 웃는 표정에 눈은 뜬 건지 감은 건지 알 수 없는 양 하고 있지만, 아주 드물게 눈을 뜨면 그때서야 노을이 지고 난 자리에 남아있는 불씨같은 붉은 눈동자를 마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 위에 일순 닿았다 흐려지는 희미한 빛의 잔상과 같은 것을.
Detail
1 솔직하고, 단순하고, 낙천적이다. 아니, 그건 너무 긍정적인 평가인가? 누가 들이부은 흙탕물을 뒤집어 써도 넉살좋게 웃는 양 하며, 밖에 태풍이 몰아치는데 돌아가면 조선소 일꾼들이 좋아하겠다느니 말하는 것을 보면 그냥 대책없는 낙관주의자가 아닌가. 무슨 일이 일어나도 늘 웃는 얼굴로, 때론 분위기 파악을 못한다고 핀잔을 듣지만 꿋꿋이 그런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잔뼈굵은 선원들은 바보도 이런 바보가 없다며 한탄하지만, 어찌저찌 일은 끊이지 않는 걸 보면 제법 인망은 있는 모양이지.

2 하긴, 놀라운 일도 아닌 것이 이 이등항해사는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친절하다. 자주 얼굴을 맞대는 이들은 물론 낯선 자들에게도 가능한 호의를 베풀곤 해서, 한번은 같은 배를 탔던 선장이 이유를 물어봤더니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내게 객이고, 손님은 정중히 대접해야 하는 법이다’라는 식의 대답을 했다가 네 배도 아닌데 승객 운운 한다며 폭소를 유발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나저나 가족도 친구도 아니고 손님이라니, 어쩐지 거리감 있는 호칭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지만 옆에서 공짜로 술값을 내주는 것을 보다보면 혀를 차면서도 기분좋게 잊게 되는, 고작 그정도의 위화감이다. 면전에 대고 침을 뱉지 않는 한 제이 밀러는 당신에게 친근하고 정중하게 대할 것이며, 도움을 청하면 최대한 성의껏 살펴줄 것이다. 그나마 보증을 안 선 건 옆에서 뜯어말리는 사람들의 공이라고 할까.

3 가족은 없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아주 어릴 적에 친지들과는 뿔뿔이 흩어졌고, 사리분별이 될 즈음에는 동생 하나와 아버지, 이렇게 셋이서 떠도는 생활을 했다는 모양. 그마저도 제이 밀러가 열댓살 되었을 즈음엔 일찌감치 동생은 잃어버리고 아버지는 오랜 떠돌이 생활로 얻은 병에 타나토스의 품으로 떠난 형편이었다. 잃어버린 동생에 대해서는 너무 옛날 일이라 특별히 수소문하는 기색도 없고, 그냥 어디선가 잘 살고 있겠거니 하는 모양.

4 잠깐, 그러면 저기 부두에서 제이 밀러에게 잔소리를 하는 단발의 조금 어린 아가씨는 누구냐고? 그야 물론 나이 지긋한 할머니와 함께 어린 동생들을 돌보는 루스 페이시 양이다. 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저 웃음이 헤픈 이등항해사가 어디 가서 허튼 계약을 맺지 않게 돌봐주는 일등공신이라고 할까. 제이 밀러가 가족을 잃은 후 페이시 가족이 얹혀 사는 형편에도 기꺼이 자리를 내주었고, 제이 밀러는 항해사로 일하며 받은 봉급을 대체로 그들을 위해 쓰고 있다. 어째서인지 옛날부터 인연이 있는 것치곤 결혼 이야기는 전혀 없지만, 주변에 따르면 거의 가족과 같은 사이라고들 한다. 지금은 그들이 제이 밀러의 돌아갈 곳이다. 

5 주로 엘리시온 본토와 할리카사 공국을 오가는 무역선이나 화물선을 타고 다니지만, 그걸 감안해도 젊은 나이에 비해서는 다녀본 곳이 꽤 많은 편이다. 떠돌이 생활을 해서 그런가, 카스텔노바, 몬트레이븐 같은 본토의 도시는 물론이고 알메이다나 아코스타까지도 가본 적 있다고 한다. 다만 북부 도시에는 발을 들여본 적이 없다는 듯. 마물이나 혼혈에 대해서도 소문만 들었지 잘 아는 바가 없다.

5 선원이 되기 전까지는 다양한 일을 하며 먹고 살았다. 오페라 극장 청소부, 구두닦이, 신문팔이에 세탁부며 주점의 급사까지. 1 피니언이라도 벌 수 있다면 가리지 않고 뭐든 했다. 먹여 살릴 가족이 있는 사람이 으레 그렇듯이. 본격적으로 선원 생활을 하게 된 건 아버지의 죽음 후, 할리카사로 돌아가기 위해 몰래 숨어든 배에 걸려 잡일꾼 노릇을 하면서부터다. 

6 즐기는 것은 노래와 춤, 그리고 술. 고상한 무도회장이나 오페라 극장에서 볼 것과는 비교도 안되지만, 바닥을 두드리는 스텝은 경쾌하고 출처불명의 노래도 흥겹게 한다. 즉흥적으로 분위기를 띄우는 것이 장기라면 장기.
만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다보니 싫어하는 것은 거의 없지만 딱 하나, 9라는 숫자를 꺼린다. 미신을 믿는다는 점에서는 어쩔 수 없이 뱃사람일까. 우습게도 제이 밀러의 생일은 9월인지라, 매사를 낙관하면서도 그 부분만큼은 푸념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7 공부에는 영 소질이 없다. 초급 아카데미도 중퇴한 마당에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그나마 수학에는 재능이 있었던 모양이지만, 그 외의 학문은 아는 바가 전무한 수준. 이제 측량이나 뱃일 할 때 필요한 지식 말고는 거의 모른다. 본인도 공부를 하려는 의지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뭘 해야할지 막막한데다 집중력도 없어서 도통 진척이 없다. 아마 누구든 이 인간을 가르치려면 대단히 인내심이 좋아야 할 텐데…

8 그런 사람이 한 명 있었던가. 그래, 그 사람. 조 비노슈.
십여 년 전에 키만 웃자란 채 다른 학생의 손에 끌려 야학에 들어온 그 곱슬머리 학생을 혹 본 적 있다면, 그 시절에는 좀 더 조용하고, 웃음기 없는 소녀-혹은 소년이었던 것 같다고 회고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때도 공부머리는 영 없어서 꾸벅꾸벅 졸기도 했지만 나름대로 인생에서 그나마 성실하게 무언가를 배우려고 시도했던 시절이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중하지 못하고 종종 수업시간에 딴짓을 하기도 하던 불성실한 학생을 그 선생님이 어떻게 보았을지는 과연 모르겠지만…
아, 그래도 받아쓰기만큼은 언제나 만점이었다.
Relationship

우티스

십여 년 전, 제이 밀러가 조 비노슈의 야학을 듣던 시기 그닥 훌륭한 학생이 아니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날의 일에 점수를 매긴다면 분명 낙제점일 것이다. 잠든 우티스를 발견하고, 실수로 다가갔다가 꼬리의 뱀에게 물렸던 것. 다행히 심하게 다치지 않았고 조의 처치로 금방 나았지만, 제이 밀러의 오른팔에는 흉터가 남았다. 그리고 아마도 무심결에 뱉은 말에 마찬가지로 상처를 입은 마음이 있을 것이다. 좀 더 잘 알았다면 좋았을까. 그날의 일을 후회하면서 제이 밀러는 생각한다. 만에 하나 다시 만난다면 사과하고, 좀 더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고.
아스포델 페르세포네 엘리시온

하일스가르드. 모피 무역으로 유명한 서부 도시에 일을 하러 갔다가 알게 된 사이. 더 정확히는 술로 만난 사이라고 할까. 독주를 기울이며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던 사이 상대가 사냥터지기라는 사실을 눈치챈 제이 밀러가 먼저 사격을 배워보고 싶다고 요청했지만… 결과는 영 신통치 않았다. 자칫하다가는 제 발등을 쏠 것 같은 행태에 사격 수업은 중지되었지만, 그래도 인연이라고 제이 밀러는 가끔 마르티나를 방문해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는 모양이다.
헤로도토스 칼리오페

헤로도토스 칼리오페의 팬은 은하수의 별만큼 많겠지만, 이만큼이나 소박한 선물을 건넨 팬은 드물지 않을까. 대략 11년 전, 포타모이 대극장의 청소부로 일하던 제이 밀러는 무대에 나선 어린 음악가의 연주를 우연히 엿듣고 처음으로 노래가 아름답다는 인상을 받았다. 비록 당시에는 줄 수 있는 것이 한 송이 들꽃을 몰래 대기실에 두고 가는 것뿐이었다 해도, 제이 밀러가 그 류트 연주와 노랫소리에 반한 것은 분명 사실이다. 이후 배를 타고 돌아다니면서도 그 음악을 잊지 못해 이따금 조개껍데기나 유리 공예품이 동봉된 소박한 팬레터를 보내곤 하는, 나름대로 오래된 팬이라고 볼 수 있으리라. 곧 은퇴한다는 소식에 아쉬움을 감추지 못할 정도로.
다이네 브리사스

6년 전, 남부 도시 카스텔노바에서 머무를 때, 밤중에 길을 잃고 헤매던 다이네의 동생을 제이 밀러가 특유의 오지랖으로 도와준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나름대로 친해졌던 사이가 멀어진 것은 제이가 배에 일어난 사고를 지나가듯 언급한 뒤의 일. 자신과 가까워진 탓에 휘말렸을지 모른다는 다이네의 이야기에, 제이는 당황스러워 하면서도 그 뜻을 존중해 거리를 두기로 했다. 이후로는 적정선을 지켜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 제이 밀러가 드물게 예의를 갖춰 선을 지키려 노력하는 티가 나는 상대기도 하다.
아크라티오 스비논

무탈한 항해를 위해서는 항해사만큼이나 노를 젓는 이들도 중요한 법이다. 그 점에서 처음 범선에 오를 선원들끼리 인사를 나눌 때 제이 밀러는 아크라티오를 높게 평가했다. 제대로 말을 트게 된 것은 우연히 노꾼들의 구역을 방문했을 적, 돌아다니던 아크라티오와 만나면서부터. 언제나처럼 가벼운 호의로 시작된 대화는 항해 중 제법 다양한 곳으로 가지를 뻗어나갔다. 항해를 무사히 마치고, 각자 돌아갈 곳으로 향하더라도, 그렇게 대화를 나눈 시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 어쩌면 또 같은 배를 타게 될지도 모르지!
아스트라페 바르카스

바다에서 해로를 읽어도 육지에서 길을 찾는 재주는 도통 찾아볼 수 없는 이등항해사는, 운나쁘게도 루미에르의 어느 숲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그때 도움을 받은 숲지기가 아스트라페. 이후 감사를 전하려 숲에 방문했다가 한 번 더 길을 잃은 것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으나… 어쨌든 제이 밀러의 허술함에 혀를 차면서도 연락이 닿을 수 있는 인근 우체국을 알려준 숲지기 덕분에 인연이 이어지게 되었다.
에멜리아 “라이헨베르크” 슈트라우스

항해를 하다보면 별별 일이 다 생기는 법이지만, 하필 로젠펠트에서 가장 화려한 살롱 주인과 관련된 물건에 문제가 생기다니, 이런 불운도 없지! 굳이 따지자면 제이 밀러의 과실은 아니었으나, 주변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고 나섰다가 배상 책임도 함께 떠안게 됐다. 비교적 최근의 일이지만 대리인을 통해 에멜리아에게 독촉받는 중인 사이. 물론 제이 밀러 쪽에서는 여느때처럼 마냥 낙천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카탈리나 바스케스

연구 목적으로 떠돌아다니던 교수-카탈리나를 처음 보았을 때 제이 밀러는 적잖이 당황했다. 아무리 곳곳의 도시를 오갔대도 여전히 마물 혼혈이나 쿼터는 그 자신에게 낯선 존재였으므로. 하지만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몇 번 같은 배에 손님과 선원으로 얼굴을 보다보니 익숙해졌을까. 제이 밀러가 괜히 말을 붙여보기도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비록 제이는 대부분 못 알아듣긴 했지만, 남대륙의 고문서에 관해 성실하게 대답해주기도 했고.
레이아스 레라지에

어린 시절 할리카사에서 알고 지내던 친구. 나름대로 친근하게 지냈지만, 제이 밀러가 할리카사를 떠나 제국 본토를 떠돌아다니게 되면서 자연스레 끊긴 인연이었다. 우연히 탄 배에서 선원과 여행객으로 재회하지 않았더라면! 비록 세월이 흘러 성격이 다소 달라진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재회는 반가운 것이다. 옛 인연 때문인지 제이 밀러가 편하게 반말을 쓰는 몇 안 되는 상대이기도 하다.
유진 Y. 어비스

조 비노슈의 야학을 들으러 다니던 시기, 제이 밀러는 자연스럽게 같이 가르치는 유진 또한 알게 되었다. 비록 썩 성실한 학생은 아니었으나, 무뚝뚝한 성격과 설명하는 솜씨가 탁월했던 교사를 나름대로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다. 반대로, 그 또한 받아쓰기만은 늘 만점이었던 제이 밀러를 어쩌면 조금은 눈 여겨봤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아무튼 야학은 졸업했지만, 가끔 안부를 물으러 찾아가는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