므네모시네가 촛불로 비춰낸 원석을 아폴론이 키워내 월계관을 둘러준 ‘무사이’를 아는가? 므네모시네와 아폴론의 손길 아래 세상의 빛을 본 아홉 명의 예술가들을 우리는 무사이라 부른다. 그들은 칼리오페, 클레이오, 우라니아, 멜포메네, 탈리아, 테르프시코레, 폴리휨니아, 에라토, 에우테르페라는 이름을 가진 형제들로, 저마다 각기 다른 예술을 했다.
예술가는 필멸하나 예술은 불멸할지어니! 처음 그 이름을 가진 무사이는 타르타로스 너머로 가며 더는 이 세상에 없지만 어머니 무사이의 이름을 계승한 딸 무사이는 예술이라는 학문으로 제국의 역사를 노래하며 여름과 겨울, 대지와 하늘, 산과 바다, 사랑과 이별, 빛과 어둠,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 과거와 미래, 그리고 사람과 사람을 하나로 연결했다.
그리고 이곳, 무사이 중 한 명인 칼리오페가 노래를 부르고 류트를 연주 하는 곳으로 잘 알려진 ‘그’ 포타모이 대극장이 창문 너머로 보이는 훤히 보이는 어느 한 고급 레스토랑에는 질 좋은 쥐스토코르를 입은 중년과 푸른색 케이프를 팔걸이에 걸쳐둔 청년이 고급 와인을 기울이며 시간을 죽이고 있다.
므네모시네가 촛불로 비춰낸 원석을 아폴론이 키워내 월계관을 둘러준 아홉 명의 무사이 중 하나인 칼리오페를 모른다 하였는가? 맙소사. 아무리 무사이의 역사가 제국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어 무사이를 후원하는 이들의 이름과 가문이 바뀌었다고 해도. 무사이, 칼리오페를 모르다니.
자네. 대체 어디에서 올라온 촌뜨기인지는 몰라도 이곳에서 칼리오페를 모르는 건 실례야. 암, 그렇고 말고. 세상에 많고 많은 이들이 존재하고. 그 많고 많은 이들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취향이 있지만 취향 위에 올라오는 절대적인 미가 있다면 그건 분명 헤로도토스 칼리오페를 향해 하는 말일 테니.
오늘따라 별이 유난히 밝군. 그래, 저 새까만 하늘을 향해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움켜쥘 수 있다면. 나는 그것을 물레에 넣고 돌려 뽑아낸 실을 그의 머리카락이라 부르겠네. 이처럼 그의 검은 머리카락은 윤기가 흐르고 매끄럽지. 조명 아래 있을 때는 꼭 밤하늘 위의 별이 반짝이기라도 하는 것 같다니까. 그의 머리칼을 가만 바라보며 류트 연주를 들으면 내 눈앞에 은하수가 펼쳐진 기분이 들지.
어디 그뿐인가? 늘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은 꼭 포도 줄기 같은 것이. 향수를 뿌리지 않았는데도 달큰한 포도 향이 느껴지는 착각까지 들게 해주네. 자연스럽게 가르마를 탄 앞머리는 이마를 훤히 드러나게 해주고 그의 오뚝한 콧등에 닿지. 옆머리와 뒷머리는 목을 덮을 정도지만 묶이지는 않을 정도의 길이야. 은퇴한 그의 어머니처럼 머리를 기르기라도 하는 걸까. —그의 어머니 칼리오페는 머리카락을 길게 길러 땋아내렸거든. 스물이란 나이에 은퇴한 게 아쉽지만 저리 번듯한 아이가 그의 뒤를 이었으니 무엇이 문제겠나!— 잘은 모르겠지만 난 그의 고수머리가 참으로 마음에 들어.
호선을 그리는 짙은 눈썹 아래, 싱그러운 눈은 여름날의 넓은 평야와 광활한 바다를 품었지. 익지 않은 밀이 풍요롭게 보일 수도 있다는 건 그를 통해 처음 알았네. 밀은 우리들의 배를 채워주는 황금색으로 물들었을 때가 가장 아름다운 줄 알았는데 말이지. 어쩌면 바다가 녹아내려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어. 우리는 늘 바다에게 마음을 빼앗기니 그 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눈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반짝이는 청록빛 눈은 대체로 저 멀리 보이는 달처럼 둥글게 휘어있을 때가 많네. 그의 성격만큼이나 온화하고 상냥하게.
그리고 자네가 보는 시선을 기준으로 왼쪽 눈 아래에 점 하나 있는데 이는 그를 가까이서 본 이들만 알 정도로 매우 작아. 나는 어떻게 알고 있는 거냐고? 허어, 이보시게. 당신 앞에 있는 내가 누구인 줄 알고 그리 묻는 겐가. 이래 보여도 저기 저 멀리 보이는 극장에서 일하는 사람이야. 그래! 그 귀족 나으리들 다니는 극장 말일세.
아무리 높으신 분들께서 저곳을 줄기차게 다녔다 해도 나만큼이나 칼리오페를 자주, 가까이에서 본 사람은 없을 거야. 이건 내가 자신 있게 말하지. 왜냐하면—. 크흠. 목이 막히니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있나…. 어이쿠. 이런. 뭘 이런 것까지. 원래 이런 거 받는 사람이 아닌데 자네 성의가 있으니 받는 거야. 알지?
조금 더 가까이 와보시게. 조금 더. 에헤이. 거참 이 친구, 제국 전역에 소문이라도 낼 생각인가. 조금 더 붙어 보게. 옳지. 그래. …내가 그의 분장실을 담당하는 사람이네. 그를 향한 모든 팬레터—팬레터라는 이름의 구혼장이 섞이기도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는 이미 혼인했네. 왼손 약지의 반지도 그렇지만, 무사이들은 대체로 열일곱에 혼인하니 말일세.—와 꽃바구니는 내 손을 거쳐 들어간다 보아도 과언이 아니야. 어느 집의 누가 무엇을 어떻게 그에게 보낸 것인지를 모두 내가 알고 있지.
술이나 마저 마실까. 모처럼 귀한 술인데 따라 놓기만 하면 아쉽잖나. 그래. 어디까지 이야기를 하다 말았더라…. 아, 그래. 이걸 아직 말하지 않았군. 그가 늘 앉아서 노래를 하고 —칼리오페라는 이름에 걸맞은 매우 아름다운 소리지. 그의 노래에 정신을 잃은 이가 있다고 말 하였나?— 연주를 하니 잘 모르는 이들이 많지만 그의 신장은 165cm 일세. 눈으로 봤을 때는 그보다 더 커 보이지만 눈금이 그어진 자는 사람의 눈 보다 정확하지.
겹겹이 두른 옷 때문에 그의 체격을 착각하는 이들이 많은데 그는 선이 얇아. 그의 손가락만큼이나 얇지. 얇으면서도 부드러운 곡선은 마치 바람에 흩날리는 비단 같다고나 할까. 제국 전역의 내로라하는 조각가들이 와도 그만큼이나 섬세하고 우아한 이는 담아내지 못할 거라 내 단언하지.
아아, 그도 이제 열여덟이니 조만간 그의 어머니처럼 은퇴를 하겠지. 누구와 혼인했는지 통 알려진 것이 없어 아쉽지만 그의 어머니처럼 그도 좋은 짝을 만나 혼인했을 테니 아이는 물을 것도 없고 은퇴 후 아이들을 아이들을 가르치느라 무대에는 오르지 않겠지. 지금의 칼리오페만큼이나 그의 노랫소리도 아름다웠는데 말이야. 이거 정말 아쉽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