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dotus Calliope
헤로도토스 칼리오페 

들려주소서, 무사 여신이여!


“당신을 위한 노래를.”



Job
음악가
Region
루미에르
Age
18세
Called
They, Them​
Sir
Appearance
므네모시네가 촛불로 비춰낸 원석을 아폴론이 키워내 월계관을 둘러준 ‘무사이’를 아는가? 므네모시네와 아폴론의 손길 아래 세상의 빛을 본 아홉 명의 예술가들을 우리는 무사이라 부른다. 그들은 칼리오페, 클레이오, 우라니아, 멜포메네, 탈리아, 테르프시코레, 폴리휨니아, 에라토, 에우테르페라는 이름을 가진 형제들로, 저마다 각기 다른 예술을 했다.

 예술가는 필멸하나 예술은 불멸할지어니! 처음 그 이름을 가진 무사이는 타르타로스 너머로 가며 더는 이 세상에 없지만 어머니 무사이의 이름을 계승한 딸 무사이는 예술이라는 학문으로 제국의 역사를 노래하며 여름과 겨울, 대지와 하늘, 산과 바다, 사랑과 이별, 빛과 어둠,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 과거와 미래, 그리고 사람과 사람을 하나로 연결했다.

 그리고 이곳, 무사이 중 한 명인 칼리오페가 노래를 부르고 류트를 연주 하는 곳으로 잘 알려진 ‘그’ 포타모이 대극장이 창문 너머로 보이는 훤히 보이는 어느 한 고급 레스토랑에는 질 좋은 쥐스토코르를 입은 중년과 푸른색 케이프를 팔걸이에 걸쳐둔 청년이 고급 와인을 기울이며 시간을 죽이고 있다.

 므네모시네가 촛불로 비춰낸 원석을 아폴론이 키워내 월계관을 둘러준 아홉 명의 무사이 중 하나인 칼리오페를 모른다 하였는가? 맙소사. 아무리 무사이의 역사가 제국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어 무사이를 후원하는 이들의 이름과 가문이 바뀌었다고 해도. 무사이, 칼리오페를 모르다니.

 자네. 대체 어디에서 올라온 촌뜨기인지는 몰라도 이곳에서 칼리오페를 모르는 건 실례야. 암, 그렇고 말고. 세상에 많고 많은 이들이 존재하고. 그 많고 많은 이들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취향이 있지만 취향 위에 올라오는 절대적인 미가 있다면 그건 분명 헤로도토스 칼리오페를 향해 하는 말일 테니.

 오늘따라 별이 유난히 밝군. 그래, 저 새까만 하늘을 향해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움켜쥘 수 있다면. 나는 그것을 물레에 넣고 돌려 뽑아낸 실을 그의 머리카락이라 부르겠네. 이처럼 그의 검은 머리카락은 윤기가 흐르고 매끄럽지. 조명 아래 있을 때는 꼭 밤하늘 위의 별이 반짝이기라도 하는 것 같다니까. 그의 머리칼을 가만 바라보며 류트 연주를 들으면 내 눈앞에 은하수가 펼쳐진 기분이 들지.

 어디 그뿐인가? 늘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은 꼭 포도 줄기 같은 것이. 향수를 뿌리지 않았는데도 달큰한 포도 향이 느껴지는 착각까지 들게 해주네. 자연스럽게 가르마를 탄 앞머리는 이마를 훤히 드러나게 해주고 그의 오뚝한 콧등에 닿지. 옆머리와 뒷머리는 목을 덮을 정도지만 묶이지는 않을 정도의 길이야. 은퇴한 그의 어머니처럼 머리를 기르기라도 하는 걸까. —그의 어머니 칼리오페는 머리카락을 길게 길러 땋아내렸거든. 스물이란 나이에 은퇴한 게 아쉽지만 저리 번듯한 아이가 그의 뒤를 이었으니 무엇이 문제겠나!— 잘은 모르겠지만 난 그의 고수머리가 참으로 마음에 들어.

 호선을 그리는 짙은 눈썹 아래, 싱그러운 눈은 여름날의 넓은 평야와 광활한 바다를 품었지. 익지 않은 밀이 풍요롭게 보일 수도 있다는 건 그를 통해 처음 알았네. 밀은 우리들의 배를 채워주는 황금색으로 물들었을 때가 가장 아름다운 줄 알았는데 말이지. 어쩌면 바다가 녹아내려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어. 우리는 늘 바다에게 마음을 빼앗기니 그 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눈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반짝이는 청록빛 눈은 대체로 저 멀리 보이는 달처럼 둥글게 휘어있을 때가 많네. 그의 성격만큼이나 온화하고 상냥하게.

 그리고 자네가 보는 시선을 기준으로 왼쪽 눈 아래에 점 하나 있는데 이는 그를 가까이서 본 이들만 알 정도로 매우 작아. 나는 어떻게 알고 있는 거냐고? 허어, 이보시게. 당신 앞에 있는 내가 누구인 줄 알고 그리 묻는 겐가. 이래 보여도 저기 저 멀리 보이는 극장에서 일하는 사람이야. 그래! 그 귀족 나으리들 다니는 극장 말일세.

 아무리 높으신 분들께서 저곳을 줄기차게 다녔다 해도 나만큼이나 칼리오페를 자주, 가까이에서 본 사람은 없을 거야. 이건 내가 자신 있게 말하지. 왜냐하면—. 크흠. 목이 막히니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있나…. 어이쿠. 이런. 뭘 이런 것까지. 원래 이런 거 받는 사람이 아닌데 자네 성의가 있으니 받는 거야. 알지?

 조금 더 가까이 와보시게. 조금 더. 에헤이. 거참 이 친구, 제국 전역에 소문이라도 낼 생각인가. 조금 더 붙어 보게. 옳지. 그래. …내가 그의 분장실을 담당하는 사람이네. 그를 향한 모든 팬레터—팬레터라는 이름의 구혼장이 섞이기도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는 이미 혼인했네. 왼손 약지의 반지도 그렇지만, 무사이들은 대체로 열일곱에 혼인하니 말일세.—와 꽃바구니는 내 손을 거쳐 들어간다 보아도 과언이 아니야. 어느 집의 누가 무엇을 어떻게 그에게 보낸 것인지를 모두 내가 알고 있지.

 술이나 마저 마실까. 모처럼 귀한 술인데 따라 놓기만 하면 아쉽잖나. 그래. 어디까지 이야기를 하다 말았더라…. 아, 그래. 이걸 아직 말하지 않았군. 그가 늘 앉아서 노래를 하고 —칼리오페라는 이름에 걸맞은 매우 아름다운 소리지. 그의 노래에 정신을 잃은 이가 있다고 말 하였나?— 연주를 하니 잘 모르는 이들이 많지만 그의 신장은 165cm 일세. 눈으로 봤을 때는 그보다 더 커 보이지만 눈금이 그어진 자는 사람의 눈 보다 정확하지.

 겹겹이 두른 옷 때문에 그의 체격을 착각하는 이들이 많은데 그는 선이 얇아. 그의 손가락만큼이나 얇지. 얇으면서도 부드러운 곡선은 마치 바람에 흩날리는 비단 같다고나 할까. 제국 전역의 내로라하는 조각가들이 와도 그만큼이나 섬세하고 우아한 이는 담아내지 못할 거라 내 단언하지.

 아아, 그도 이제 열여덟이니 조만간 그의 어머니처럼 은퇴를 하겠지. 누구와 혼인했는지 통 알려진 것이 없어 아쉽지만 그의 어머니처럼 그도 좋은 짝을 만나 혼인했을 테니 아이는 물을 것도 없고 은퇴 후 아이들을 아이들을 가르치느라 무대에는 오르지 않겠지. 지금의 칼리오페만큼이나 그의 노랫소리도 아름다웠는데 말이야. 이거 정말 아쉽군.
Detail
…저를 위해 이리 아름다운 꽃을 손수 준비해 주시다니. 정말 감사해요. 향이 좋네요. 요즘 같은 계절에는 이리 아름답고 풍성한 꽃을 보기 드문데…. 가장 볕이 잘 드는 자리에 놓고 매일 같이 바라볼게요. 당신께서 저를 바라봐 주신 것만큼이나 정성을 가득 담아.

 앞이 아닌 옆에 앉아주셔도 괜찮아요. 오, 그럼요. 이 카우치가 있는 이유는 당신과 같은 분들을 위해서니까요. 그러니 염려하지 마시고 편히 앉아주세요. …아름다운 눈이에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만났더라면 당신의 눈이 바다보다 맑은 색이라는 걸 알지 못했을 거라 생각하니 역시 부탁드리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옆에 앉아 주셔서 고마워요.

 오늘 연주는 어떠셨나요? 아아, 고마워요. 매일 손에 쥐는 류트이지만 무대에 오를 때면 늘 긴장이 되거든요. 당신께 보다 좋은 소리를 들려주고 싶어서 그런 걸까요. 어쩌면 당신께서 저를 바라보고 있단 생각에 그런 것일지도…. 앗, 이런. 들켰네요. 미안해요. 당신의 부끄러워하는 얼굴마저도 귀여워서 그만 짓궂게 굴었어요. 너무 노여워하지는 말아주세요. 당신께서 저를 찾아오지 않으면 전 몹시도 외로울 테니…. 햇살을 받지 못하는 꽃처럼 당신을 그리며 서서히 말라버릴지도 몰라요.

 감사해요. 하해와 같은 넓은 아량으로 저를 품어주어서. 다음 연주도 기대해 주세요. 그날에도 당신을 위해 노래할 테니. 꼭 와주셔야 해요. 이건 제가 당신께 위해 준비한 초대장이에요. 당신께서는 이미 이 초대장을 받았을 것 같지만…. 어째서인지 이것만큼은 제가 당신께 드리고 싶었던지라. …받아주실 거죠?

 당신의 손에 초대장을 쥐여줄 수 있는 영광을 내게 주어 고마워요. 당신과 함께 있고 싶지만 애석하게도 닉스가 날개를 펼치고 셀레네의 은빛 마차와 함께 휘프노스가 찾아올 시간이 되었네요. 이별의 아쉬움을 재회의 설렘으로 채운다면 지금 이 시간도 그리 섭하지만은 않을 거예요. 그러면, 당신과 다시 만날 그날을 기약하며. 안녕히. 

 … … ….

 나오셔도 괜찮아요. 바쁘신 분을 오랫동안 기다리게 해서 죄송할 따름이에요. 종종 이리 예기치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지라…. 문은 잠가 두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앞으로 1시간 정도는 이 주변을 오가는 이가 없을 테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되고요.

 어디까지 이야기하고 있었죠? 아, 맞아요. ‘조 비노슈’. 그와의 관계를 물으셨지요. 무어라 대답을 드려야 할지…. 이야기가 길어질 듯싶은데 차는 어떠세요? 마침 괜찮은 찻잎을 선물받았고, 차 내리는 솜씨도 그리 나쁘지 않으니 마음에 드실 거예요. 종종 실수로 차가운 물을 붓기도 하지만….

 앗. 농담이에요. 이번에는 헷갈리지 않을 테니 긴장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제가 마시는 차는 매일 같이 저 스스로 내리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처음에는 서툴렀지만 매일매일 꾸준히 노력해서 차를 잘 우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거든요. 으음, 혹시 허브티 괜찮으세요? 시간이 늦었으니 따뜻한 허브티가 좋을 것 같아서요. 물론 저는 허브티가 아니더라도 괜찮아요. 저보단 손님인 선생님의 취향이 중요하니까요.

 …수면에 도움이 되는 허브가 무엇인지 아세요? 괜찮아요. 이건 답을 있는 물음이지만 동시에 답이 없는 물음이기도 하니. 물이 다 끓기까지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하니까요. 선생님께서 고민 하시는 동안 제가 먼저 선생님의 물음에 대한 답을 드리자면, 저는 66세의 그의 모습을 본 적이 있어요. 이제 막 감옥에서 나온 그와 마주쳤다고나 할까요. 우연이라면 우연. 운명이라면 운명일 거예요. 그날 짧게 나눈 몇 마디로 제 영감이 바뀌었으니까요.

 다수가 알다시피 예술가에게 영감은 생명이에요. 우리는 영감을 잃는 순간 예술에게 버림받고. 예술에게 버림받은 예술가는 곧 대중에게 버림받으니까요. 대중을 보지 않고 자신의 세계를 세상에 내놓는 예술가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러기란 쉽지 않아요. 제국의 모든 예술가들은 후원자의 후원이 있어야만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며 글을 쓰고 춤을 출 수 있으니까요.

 애석하게도 이것이 본 현실이에요. 자유로워 보이지만 그 누구보다 현실에 못 박힌 이들이 예술가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늘 타협을 하고 뮤즈를 찾아 이 넓은 세상을 헤매요. 그런데 저는 운 좋게 겨우 8살의 나이에 뮤즈를 찾았어요. 그는 분명 제 인생의 뮤즈에요. 그에게 있어서 나는 단순히 대화를 나눈 상대에 불과하겠지만요….

 물이 다 끓었네요. 잠시 실례할게요. 고민은 충분히 하셨나요? 수면에 도움이 되는 허브. …선생님께서 생각한 수면에 도움이 되는 허브는 그것이군요. …알겠어요. 기억할게요. 그래야 다음번에도 선생님께 차를 드릴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오늘도 선생님에 대한 걸 하나 배웠네요? …맞아요. 솔직히 기뻐요. 모르는 걸 알게 된다는 건 기쁜 일이니까요.

 진하게 우린 차를 좋아하세요? 연하게 우린 차를 좋아하세요? 개인적으로 저는 진하게 우린 따뜻한 차를 좋아해요. 이래야 향을 제대로 느낄 수 있거든요. 차에 큰 관심을 두지 않으면 모르지만 그렇게 배우기도 했고, 그동안 여러 방법으로 마셔보며 배운 경험으로는 저는 진하게 우린 차를 좋아한다는 거였어요. 네에, 그러면 오늘은 선생님께 맞춰서 연하게.

 설탕 필요하세요? 식사 전이라면 간단한 간식이라도 내올까요? 라즈베리를 넣어 만든 쿠키가 있는데 포만감이 있어 식사 대용으로 괜찮거든요. 라즈베리가 취향이 아니라면 블루베리와 호두도 있는데…. 오, 알겠어요. 그러면 라즈베리 쿠키로. 크기가 제법 큰 편이라 어쩌면 선생님의 손만큼이나 클지도 모르겠어요.

 아앗. 정말 죄송한데 테이블 위에 올려둔 책 좀 옮겨주실 수 있으세요? 주전자를 들기 전에 책을 치운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바람에 선생님께 부탁을 드리네요…. 음…궁금하시면 가져가셔서 읽으셔도 괜찮아요. 읽던 것이긴 하지만 세 번째로 읽어 보는 것이기도 하고, 한 권 더 있는지라 그것으로 마저 읽어도 저는 괜찮거든요. 그러니 궁금하시다면 부담 없이 가져가셔서 읽어주세요.
Relationship

레이아스 레라지에

헤로도토스는 다른 공연이 있을 때 다른 지역을 방문하기도 하지만 ‘공부’를 위해 다른 지역을 방문하기도 한다. 책도 좋지만 몸으로 직접 경험하는 것만큼 시야가 넓고 깊어지는 경험도 없으니. 어느 날의 그는 가면 축제를 보기 위해 할리카사에 방문했다. 할리카사의 가면과 함께 ‘레이아스 레라지에’도 알게 되었다. 친절한 공연 메이트는 할리카사에서 봐야 할 곳과 그곳의 일정과 특징에 대해 상세히 알려줬다. 그리고 그런 그의 은혜에 보답하듯 그도 자신이 다녀온 곳들의 공연과 전시에 대해 알려주었다. 그날의 만남 이후 종종 다른 지역을 여행하다 만나면 둘은 그날처럼 그곳의 유명한 공연과 전시를 함께한다.
로빈 크로울리

공연을 위해 로젠펠트에 방문한 어느 겨울날이었다. … 춥다. 훌쩍. 익숙지 않은 겨울 추위에 그만 제대로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공연 기간 내내 감기로 훌쩍일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의사, ‘로빈 크로울리’께 진료를 받았다. 두 번. 왜 로젠펠트를 떠나기 전에 의사 선생님을 또 만나게 되었을까. 이유는 단순하다. 처음 보는 눈이 너무 신기해서 눈사람을 만들다 또다시 감기에 걸렸기 때문이다. 약간 더 늘어난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들은 그가 뻘쭘한 얼굴로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눈사람을 선물로 드렸더니 쓴 약과 함께 사탕을 받았다. 앗, 달다. 다음에는 건강한 모습으로 여름날에 찾아뵐게요, 약속해요!
베렌 폴라트

그는 산사르의 대장장이, ‘베렌 폴라트’에게 조각품을 의뢰했다. 그에게 받은 조각품은 맙소사! 상상이상으로 훌륭하다. 세상에! 이 매끄러운 접합부. 부드럽게 휘 곡선과 원하는 크기의 원하는 모양. 아아, 상상만 했던 것이 실물이 되어 나타났다. 이런 엄청난 솜씨를 가진 대장장이를 만난 손님이 다음으로 할 행동은 무엇인가? 그래, 바로 다음 주문을 넣는 거다. 그렇게 작은 장식품과 소품용 가구를 하나 둘 주문하다 보니 어느새 3년이다. 그와 알고 지낸 시간이 벌써 3년이다 되었다. 가끔씩 시간이 나면 그의 대장간에 찾아가 의뢰를 넣으며 질문을 한다. “이건 어디에 사용하는 도구인가요?”
아델리나 셀루가

브라이어즈워크에 방문한 그는 우연히 커피하우스, 필리아에 들렸다. 향긋한 커피향으로 가득한 커피하우스의 주인, ‘아델리나 셀루가’와 함께 나눈 대화는 즐거웠고 사려 깊은 그의 배려—자신이 ‘칼리오페’임을 알고 있음에도 연주와 노래에 관련한 요구를 하지 않는다는 점.—는 고맙고 감사하기만 할 따름이었다. 그래서 헤로도토스는 그의 배려에 보답하듯 1피니언과 함께 자신의 공연 티켓을 조용히 두고 나왔다. 그런데 이것이 짧은 편지와 함께 꽃다발로 돌아올 줄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는데 말이지…. 극장 관리인에게 전해 받은 편지를 읽으며 생각한다. 시간이 나면… 아니. 시간을 내어 필리아에 들려야겠어요.
아스타르페 바르카스

음악가이기는 하나 음악만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기에 그는 종종 연극을 보러 가곤 한다. 무대에 서는 공연자의 아닌 객석에 앉아 관객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야를 배우기 위해서라도. 3년 전의 어느 날도 헤로도토스는 포타모이 대극장에서 열리는 연극을 보았다. 평소와 다른 점이라면 공연이 끝나자마자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붙들려 감상평을 나누고, 얼떨결에 찻집에 끌려가 통성명을 나누었다는 점일까. 이름 모를 옆자리의 사람… 아니. ‘아스트라페 바르카스’는 소중한 연극 감상 메이트이다. 아스트라페와 대화를 나누는 건 즐겁다. 잔소리는… 으음, 그래도 자신을 걱정해 준다는 의미니까 그마저도 기껍다.
아크라티오 스비논

지금으로부터 1년 전, 벤 스트리트에서 일주일을 머문 헤로도토스는 쪽지 한 장을 손에 쥔 채로 생선가게 주인, 아리엘에게 한 편지를 부탁했다. 수신인의 이름은 ‘아크라티오 스비논’. 그가 헤로도토스에게 남긴 짧은 쪽지와는 다르게 그의 편지는 수려한 글씨체로 편지지 일곱 장을 빼곡하게 채웠다. ‘상냥하고도 다정한, 아크라티오.’로 시작하는 편지는 추억이 된 7일간의 경험—가령 생에 처음 마신 맥주의 맛이라던가.—이 차례대로 나열되었으며, 그의 눈으로 본 아크라티오의 다정과 친절이 녹아내려있다. 편지의 끝에는 말버릇과도 같은 ‘그러면, 당신과 다시 만날 그날을 기약하며. 안녕히.’ 말이 눌러 담겼다.
엘윈 라이오스 키릴루스

우연히 들린 커피하우스에서 만난 우연한 만남.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가벼운 대화를 나누었더니 돌아오는 것은 곤란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 이쪽으로 편지하라는 말과 함께 받은, ‘엘윈 라이오스 키릴루스’의 이름이 적힌 명함. 앗. 변호사이시구나. 법률적으로 상담받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해도 좋다고요…? 오… 친절하신 분. 그렇지만, 그렇지만… 으음. 고개를 기울이며 곰곰이 생각한 그가 말한다. “법률적으로 상담받을 만한 일이 없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만일 그런 일이 생기면 꼭 변호사님께 편지할게요!” 그날 이후로 헤로도토스의 품에는 엘윈의 이름이 적힌 명함이 자리한다. 일종의 부적처럼.
유세티스

1년 전의 어느 날, 그는 건기의 알메이다에 방문했다. 책을 통해 보는 세상도 좋지만 두 눈으로 보는 세상과 그림과 활자를 통해 보는 세상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난 이후로는 시간이 허락하는 한 여행을 다니는 그는 알메이다의 수도 근처에서 더위에 반쯤 녹아내린… 아니. 죽어가고 있는 ‘유세티스’를 만난다. 곤란해 보이는 사람은? 도와준다!는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사고의 흐름으로 말을 붙였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손에는 음료수가, 입에는 밥이 들어갔다. 어라, 받아 버렸어. 어쩌지? “류트는 없지만 노래 불러 드려도 괜찮을까요? 아니면 다리가 자란 항아리가...” 조금은 독특한 동행을 짧게 했다.
유진 Y. 어비스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의 헤로도토스는 루미에르의 거리에서 길을 헤매는 사람을 만났다. 관광을 하러 온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무엇일까? 잘은 모르겠지만 곤란한 사람을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배운 그로서는 이름 모를 사람에게 말을 붙였다. “이쪽 길로 가는 것보단 앞에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는 편이 더 빠르실 거예요. 신발이… 음. 급한 일이 아니라면 제가 잠시 닦아드려도 괜찮을까요?” 어린 헤로도토스의 말 때문일까. 그가 뒤늦게 곤란한 사내가 데일리 헤르메스의 기자인 ‘유진 어비스’라는 사실을 알았듯이 유진도 헤로도토스가 구두닦이 소년이 아닌 음악가, 칼리오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드몬 르노 위베르

헤로도토스는 그 어느 날, 자신의 품에 꽃다발을 안겨준 팬의 이름을 기억한다. ‘이드몬 르노 위베르’. 다정하신 것 같아. 그리고? 정말 멋진 옷을 입고 계신걸. 그런 헤로도토스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머지않아 포타모이 대극장 측에서 ‘칼리오페’의 무대의상을 위베르 상회가 담당하게 되었다는 말을 들은 것이 벌써 4년 전이다. 극장과 상회에 있어서는 서로가 참으로 합리적이고 탁월한 비즈니스 파트너인 셈이겠지만… “꽃다발에 대한 답례에요.” 말린 꽃잎으로 만든 책갈피를 이드몬에게 건네는 헤로도토스는 비즈니스적인 것보다는 감사한 사람—팬—에 가까운 모양인가 보다. 그러니 앞에 차와 쿠키가 있지.
제이 밀러

소중하고 귀한 팬들로부터 꽃을 받은 경험은 적지 않지만 그중에서도 유난히 기억에 남는 꽃이 있다면 7살의 어느 날 대기실에서 만난 이름 모를 들꽃일 거다. “누가 주신 거지?” 들꽃을 두 손에 꼬옥 쥔 헤로도토스는 밖으로 나와 포타모이 대극장을 빙빙 돌며 포타모이 대극장의 청소부, ‘제이 밀러’를 만났다. 그때의 만남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일까. 제이 밀러는 더는 포타모이 대극장에 없지만, 종종 제이로부터 조개껍데기나 유리 공예품이 동봉된 소중한 팬레터를 받는다. 팬레터에 대한 답장을 쓰다 잠이 든 그의 머리맡에는 들꽃으로 만든 책갈피, 조개껍데기, 그리고 작은 유리 공예품이 놓여있다.
카탈리나 바스케스

독서를 취미로 둔 헤로도토스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즐겨 읽는 탓에 고서—대체로 철학이나 역사서이다.—에도 관심을 들였다. 고서는 상당히 흥미롭지만… 문제라면 언어다. 현대어로 번역이 된 고서라면 충분히 읽을 수 있지만 아직 번역되지 않은 책을 읽는 것은 그에게는 어렵다. 따라서 고어를 번역해 주는 이가 존재하는데 그가 바로 고전문헌학 교수, ‘카탈리나 바스케스’다. 몇 번의 의뢰와 몇 통의 편지, 그리고 몇 번의 만남이 이어지자 종종 카탈리나가 구해온 오래된 악보—당연하게도 번역되었다.—를 받기도 했다. 헤로도토스는 카탈리나의 마음에 보답하고자 카탈리나만을 위한 작은 공연을 준비한다.
퀼리아 마르가타

류트를 손에 쥔 음악가와 오페라 가수는 서로 부르는 노래가 다름에도 ‘음악’이란 이름에 묶여 공연장의 대기실에서 만났다. 가볍게 주고받은 이야기는 편지가 되어 말로도, 글로도 이따금씩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렇게 몇 번 주고받았더니 이제는 자연스럽게 안부 인사와 함께 음악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눈다. 어디 그뿐인가? 친분이 생긴 만큼 그들은 자신의 공연이 없는 날에는 서로의 공연을 보러 간다. 어떨 때는 미리 언질을 주고, 어떨 때는 언질을 주지 않고—언질을 주지 않는 쪽은 대체로 ‘퀼리아 마르가타’이다. —몰래 객석에 앉아 상대를 바라보며 상대의 노래를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