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적인, 태연한, 근면한, 신중한
경쾌한 구둣발 소리가 바쁘게 마차를 오른다. 수많은 지역과 나라를 오가며 계약을 따내고, 협상을 체결한 뒤에는 또다시 다음 일터로 향한다. 보잘것없는 노동자에서 제국 내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부유해진 사내는 늘어질 법도 하건만 여전히 직접 품질을 검토하며 수많은 일거리를 찾아다닌다. 사람과 어울리며 인맥을 쌓고, 누구에게든 친절한 동시에 상대에게 얻어낼 수 있는 것을 계산한다. 그가 내미는 것에 공짜는 없다. 겉으로는 그래 보일지라도 말이다. 타인의 비위를 맞추고 웃는 낯으로 모욕을 받아내며 기회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의 평가는 좋든 나쁘든 언제나 하나의 결말에 도달한다. 부유함에도 만족을 모르는 자. 그 모습은 필사적이기까지 하나, 그를 인정하거나 싫어하는 이들 중 누구도 명확한 이유를 모른다.
그 유명한 “위베르 상회”의 주인이자 귀족에 버금갈 만큼 큰 장원을 지닌 사업가. 20년간 아슈포드의 염색업과 모직물의 수준을 경쟁하듯 끌어올렸다. 천의 질이 좋아지니 의류의 품질 또한 상승하여 내로라하는 귀족들의 까다로운 안목을 만족시켰고, 실력 있는 장인과 재봉사들을 대거 고용하며 탐욕스레 입지를 넓혔다. 그리하여 이제는 모두가 아슈포드하면 위베르 상회를, 그들의 옷과 천을 떠올리게 해 수많은 플로덴을 벌어들이며 지금의 자리까지 올랐다. 해마다 빈민 구호에 기부하는 금액까지 상당했으니, 황제도 이를 치하해 몇 년 전 준남작이라는 칭호를 주었으리라. 실로 매끄러운 미담이 아닌가? 허나 몇몇 호사가들은 이렇게 떠든다. 위베르 상회의 성장에 누군가의 개입이 있지 않았겠냐고. 황실에 납품되고 있는 옷들이 정녕 품질이 뛰어나다는 이유만 있겠느냐고. 소문의 당사자는 태연히 웃어넘겼을 뿐이다.
본디 염색장이었다가 재봉사를 거치며 현재의 자리까지 오른 자. 실질적인 감각이 뛰어나 제국의 유행에 일조해 왔다. 상품은 주로 귀족을 대상으로 하나, 벌이가 나쁘지 않은 제국민을 위한 상품도 있기에 몇몇 이들은 특별한 날 위베르의 리본을 차며 멋을 부리곤 한다.
젊을 적 조 비노슈의 학당에 가본 적이 있다. 조는 성실히 학생을 가르쳤고, 이드몬은 몇 번 수업을 듣다가 스승처럼 늦은 나이에 직접 아카데미에 들어갔다. 그 이후 교류한 적은 없다. 늦게나마 아카데미를 갈 수 있도록 도움받았지만, 딱 그 정도의 거리. 서로에게 스쳐 가는 인연이었을 뿐이다.
독신. 결혼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할 생각이 없는 모양. 그러나 아이를 돌보는 모습만큼은 꽤 능숙하다. 양친은 그가 막 열여덟이 되었을 때 사고로 죽은 지 오래고 동생이나 친척도 없어 그가 물러난다면 가장 유능한 이에게 대표 자리를 넘길 예정이다.
한여름에도 살갗 하나 드러내지 않고 싸매 입는다. 아슈포드의 여름이 서늘하기에 그런 것 아니겠냐는 이들도 있으나, 따뜻한 남부 도시에서도 땀 하나 흘리지 않고 단정한 차림새를 유지했다. 특히나 장갑은 어디에서도 벗지 않아 맨손을 본 사람이 거의 없다. 더위에 강하지만 종종 추위를 탄다.
장원과 더불어 커다란 집을 소유하고 있으나 소수의 하인만이 관리해 주고 있다. 누군가를 초대한 적은 드물며, 어쩐지 내부가 미로같다는 평가를 받는다.
좋아하는 것은 돈, 잘 짜인 천, 말끔히 재단된 옷, 정교한 자수, 차. 그리고 책과 새로운 이야기. 특별히 가리는 음식은 없다. 취미는 뜨개질과 자수. 늘 실과 바늘을 들고 다니며 간단한 수선은 직접 끝마친다.
아슈포드 뿐만 아니라 엘리시온 지역 곳곳에 상회의 지부가 뻗어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한 단독적인 정보망이 형성되어 있다. 가장 멀리 떨어진 지부에서 일어난 일이 반나절 만에 이드몬의 귀에 닿는다는 이야기가 있다던가? 누군가는 이를 농담이라고 여기는 모양이다만… 글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