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사냥꾼의 딸
-새로운 해의 첫 일 (1월 1일) 생. 이 세상 그 어떤 이도 제가 태어난 날을 또렷하게 기억하지는 못하는 법이니 정확한 정보는 아니다.
-왼손잡이. 이제는 오른손도 곧잘 다루어 양손잡이라 해도 문제는 없다.
-오감이 예민하다. 예민한 동시에 둔하다고 해도 좋은데, 곧잘 이런 식이다. 미각이 예민하지만, 맛있거나 맛없다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못하거나, 후각이 예민하지만, 제가 더 좋아하는 향수는 고르지 못하는 식.
해를 피한다. 태양이 가장 높게 떠오르는 시간에는, 녹색 망토를 두르고 두건을 깊게 눌러 쓰거나 나무 아래의 그늘에 머물거나 하는 일이 많다.
-새로운 것을 즐긴다. 문화, 혹은 취미, 사람, 그 어떤 것이라도. 무언가 새로운 것을 권유한다면, 그는 반드시 함께할 것이다. 당신이 이 집단에 속하게 된 새로운 사람이라면, 가장 먼저 말을 거는 사람은 그일 확률이 높다.
-낯선 이에게 쉬이 친근하게 구는 만큼, 또 받아들이는 사람의 시선이 너그럽지 못한 경우에 따라, 그가 다소 예의가 부족하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는 타인을 죄 ‘너’로 호칭하며, 존대나 경어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 그래서 그가 좋아하는 것은 드레스, 티타임, 음악, 연극과 책. 그가 열셋부터 열여섯까지 새롭게 접한 것들이며 싫어하는 것은… 죽음, 피. 그러나 그는 호는 드러낼 지언정 불호는 드러내지 않는다. 약점을 감추는 것은 사냥꾼의 가장 기본적인 생존법이므로.
ⅱ 숲바다의 길잡이
-오래도록 숲을 터전으로 하여 살아온 이답게, 그는 숲에 예민하다. 숲이 내는 소리, 숲이 걸어오는 대화를 피할 줄을 모른다. 누군가 지나가며 부러뜨려놓은 가지, 짓밟아놓은 이끼, 저 멀리서 바스러진 나뭇잎이 내는 소리 따위를 기가 막히게 알아차린다. 꽃이 피고 나무가 무성한 방향으로 해가 어디서 뜨고 어디서 지는 줄을 안다. 그는 수색과 사냥에 능숙하다.
-그는 짐승을 사냥하는 것에 능숙하나 인간과 비슷한 것을 마주하면 움추러든다. (부친의 죽음과 연관이 없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활을 잘 다루지만 체구가 작아 남들보다 짧은 활을 다루어 비거리가 짧다. 검도 단도도 곧잘 다루나, 그래, 그는 피보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ⅲ History
-그는 숲지기 겸 사냥꾼의 딸, ‘아스터’로 태어나, 마물 드글거리는 북쪽의 깊은 숲속에서 13년을 자랐다. 적어도 그가 기억하기로는 그렇다. 그는 제 의지대로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는 나이쯤에는 칼로 토끼의 뱃가죽을 가를 줄 알았고, 제 의지대로 발가락을 움직일 수 있을 나이쯤에는 이미 여우가 나다니는 길을 따라 덫을 놓을 줄 알았다.
-짐승 사냥꾼인 동시에 마물 사냥꾼이던 부친이 죽고, 그가 숲을 떠난 것은 열세살의 일이다. 누구나 흔히, 그의 부친이 마물이나 짐승의 손에 죽었을 것에 짐작하지만, 사실 부친은 다른 사냥꾼의 눈 먼 화살에 맞아 죽었다. 그는 숲에 홀로 살기에는 너무 어린 아이였으므로, 올림포스에 살던 모친이 그를 데려가게 된다.
-모친, 클레오니카 바르카스는 그를 데려가 그를 ‘문명인’ 답게 키우고자 했다. 그가 뒤집어쓴 짐승의 피가 묻은 망토와 녹색과 갈색 얼룩이 든 바지, 헤진 셔츠 따위에 진저리를 내면서. 그는 글을 읽을 줄은 알지만 어려운 단어는 알지 못하고, 대화를 할 줄은 아나 존칭이나 경어를 몰랐으며,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할 줄은 아나 스푼으로 대충 퍼먹기를 즐겼으므로 그 불쾌한 강조는 그리 대단한 비하는 아니었다. 그는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을 즐겨 3년을 모친 곁에 머물렀고, 드레스를 입고, 사전을 쌓아두고, 수와 셈 따위를 공부하고 ⎯아카데미에 가지는 않았다. 클레오니카 바르카스가 감히 부족한 딸을 세상 밖에 내놓을 리 없으므로⎯, 여러개 놓인 포크와 나이프 중 적절한 것을 고를 줄 알게 되었으나 여전히 존칭과 경어를 익히지 못한 채로 열여섯살에 집을 뛰쳐나왔다.
-그가 돌아가고자 한 것은 다시, 빛이 들지 않는 숲, 하늘을 빽빽히 가린 나무 그림자가 어지럽게 얽혀 있는 곳. 그러나 그가 태어나 자란 오두막은 이미 돌아갈 곳이 못 되었다. 그는 제가 머무를 숲을 찾아 엘리시온을 꼬박 일년 동안 떠돌았고, 그러다 우연히 조 비노슈를 만났다.
-조 비노슈는 아스트라페에게 루미에르의 어떤 귀족이 소유한 숲의 숲지기를 구한다는 것을 일러주었고, 아스트라페는 그리로 향했다. 열여덟부터 스물여섯. 아스트라페는 꼬박 8년째 그 숲의 유일한 숲지기이다. 이제 더는 그 숲에 누구 하나 찾아오지 않는다 할 지라도.